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혁거세 거서간 (문단 편집) == 기타 == * 초기의 신라 땅은 기록상 자연재해가 꽤 많은 편인데 이 시기에는 기록상 자연재해도 딱히 없다. 바로 다음 대인 [[남해 차차웅]] 때만 해도 자연재해 기록이 제법 많다. 사로국이 위치한 [[경주시|경주]] 평야는 현재도 [[영남]] 지방의 전체 생산량 중 7%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넓고 비옥한 곳이며 영남권에서 경주 평야보다 더 넓고 비옥하다 볼 수 있는 [[김해시]], [[강서구(부산)|부산 강서구]], [[밀양시]] [[하남읍]], [[창원시]] [[대산면(창원)|대산면]], [[울산광역시]] 등은 아직 [[바다]]였기 때문에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독보적으로 풍부한 물산은 사로국이 패권을 쥐는 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박혁거세의 셋째 아들 박특(朴忒)은 청평군(淸平君)에 봉해졌고, [[신라]]의 [[개국공신]]으로 책봉되었다. 박혁거세의 셋째 아들인 박특이 정말로 공이 있어서 공신에 책봉되었다면, 그는 개국 시점에 최소 10대 초반에서 20대는 되어 있었어야 한다. 개국 시점에 나름 장성한 아들을 두어야 하는 박혁거세 역시 기원전 69년생이라면 본인이 10대 초반에 지나지 않으므로 실제 출생 연도는 적어도 10년 이상 앞당겨져야 하며, 그렇게 되면 박혁거세보다도 16세나 적은 것으로 기록되는 [[알영]]부인은 그의 생모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만 개국 시점에 정말 공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개국 즈음해서 단지 출생만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박혁거세는 진짜 공이 있는 사람들을 개국 공신으로 책봉하면서 자신의 어린 두 아들 역시 덤으로 개국 공신에 책봉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아마 [[왕권]] 강화책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 심지어 '''인정 때문에''' [[마한]] 왕이 죽었음에도 병합하지 않고 조문을 보냈고, 그 이후 쇠퇴한 마한은 [[온조왕]]이 병합했다는 구절도 있다. 이전에 자기가 보낸 [[호공|사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마한이라는 [[국가]]가 하나가 아닌 수많은 국가임을 생각해보면 마한의 한 소국의 왕이 죽었고, 박혁거세는 [[진한]] 주변의 마한 소국에 조문을 보낸 것이다. 다만, 박특은 신라 박씨의 족보에서만 나오는 인물이라 실존여부가 불확실하다. 호공의 '호'자가 한국말로 '박'을 뜻한다고 해서 일반인들 중 박혁거세와 호공을 동일인물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삼국사기》가 쓰여질 무렵은 고려시대로 성씨가 없던 귀족들에게 고려에서 한족식 성씨를 하사하고 한족식 성씨 족보를 만들던 때이다. 거란족과의 차별화를 둔 것도 있다. 《삼국사기》에서 알지는 김씨, 혁거세는 박씨 등 한족식 성씨를 붙였던 것이지 《일본서기》 등 《삼국사기》 이전 내용에서 혁거세는 박씨가 아닌 그냥 혁거세로 등장한다. 또한 호공의 '박'과 혁거세의 '박'이 우연히 비슷했을 뿐이지 혁거세의 이름은 '불구내' 즉 '밝다'에서 나온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확실히 탁발선비족의 북위에서 나온 선비족들이 효문제의 한화정책에 의해 한족 성씨를 쓰고, 족보를 만든 것은 선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한족 성씨를 써도 학자들은 선비족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호공의 '호'가 '박'이라는 것만으로 박혁거세와 호공을 동일인물로 보는 것은 어려우며 혁거세의 이름은 '불구내'로 나와 있다.] * 자녀로는 아들 [[남해 차차웅]], 신라 시조 묘의 제사를 총괄한 신라의 첫 여성 제사장인 대신녀 [[아로공주]], 왕자 원,특,민 등 4남 2녀가 존재한다. *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어 교과서인 《국어독본》에는 박혁거세의 알을 [[내지]](일본 본토)의 어느 족장의 아내가 낳았는데, 불길하다 해서 상자에 담아 바다로 띄웠고, 그것이 경주 바다에 닿았다고 썼다. 하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해 어느 역사서에도 박혁거세의 알이 바다 건너 외국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으므로 대놓고 날조를 한 셈이다.[* 이 《국어독본》에서는 [[석탈해]] 신화에서의 석탈해의 고향 다파나국을 일본이라고 못 박았다. 다만 석탈해 신화의 다파나국은 박혁거세 신화와 달리 일본 열도 어딘가라는 설도 실제로 존재하긴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